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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식이야기57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동물문양

 

한국의 청동기문화의 기원에 대해 시종

'시베리아 기원설' 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상북도 영천시 어은동(漁隱洞)

출토의 동물문양 조각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은동에서 출토된

동물문양 조각품의 연대가 기원후 역사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

어은동 유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18년 8월

이다. 주민들이 각자 분배해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물들을 지방주재 순사가 수습해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인계시켰다고 한다.

​

그리고 4년 후인 1922년 5월에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의 후지다 등 3명이 현장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조사자들은 유적을 실제로

조사할 기회가 늦었기 때문에 명확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고고학상

'표준유물(標準遺物)' 이 될 수 없다.

​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어은동 출토 유물의

연대이다. 현장을 실사하고 온 3인의 보고자는 이

청동기 유물을 모도 '한대(漢代) 의 유물로 보았다.​

​

이 유물들은 동한대(東漢代)의 것이다. 그래서

어은동에서 수습된 유물은 결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기원(0) 이후의 역사시대

[신라(新羅)초기]​ 의 것이다. 최근에는 충청남도

천안시 상당동에서 13기의 고분군이 발굴되었다.

그 중 3기의 목관묘에서 모도 17점의 청동제

마형대구(馬形帶鉤)가 발견되었다. 청당동

유적의 연대는 기원후 3세기 내지 4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엄연히 백제(百濟)

시대이다.

​

기원후 2세기[어은동] 내지 4세기[청당동]의

역사시대[신라.백제] 청동제품이 기원전

10세기경의 청동기문화 기원론에 원용(援用)

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다시 말해 기원전

10세기를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 개시(開始)로

보면서, 기원 2~4세기경의 역사시대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의 표준유물로 삼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기원후 역사시대의

산물을 청동기시대의 결정적인 연대로

편년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

그동안 한국의 고고학자들이 한국 청동기시대

문화의 특징을 "스키토 시베리안 계통의

동물문양을 즐겨 쓴 점" 을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한 유물은 앞에서

제기한 어은동 출토 동물문양 청동조각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물이 없다. 뿐만 아니라

스키토 시베리안 계통의 청동기 유물 중에

어떤 유형이 유사한지 구체적으로는

논증하지 못하고 있다.​

​

설사 영천 어은동 출토 동물문양의 조각품이

한국 청동기문화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스키토 - 시베리안(scytho -

siberian) 만이 연계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동북아시아에는 동물문양이 없는가?

​

중국의 고고학적 성과는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에 충분하다. 동물문양과 관계되는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는 우선 중국 하남성

안양시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은나라 무정왕

왕비의 무덤인 부호묘(婦好墓)​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발해연안 북부 하북성. 요녕성

일대에서는 은대 혹은 은말주초 시기의

청동기 유물에서 동물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고고학계가 한국 청동문화의 원류를

스키타이-오르도스(Scythia-Ordos)에서 계속

찾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관학(官學)에

서 비롯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저자는 아직까지도 한국하계(특히 국가기관)에

이러한 외래일변도(外來一邊倒)의 스키토-

시베리아 기원설이 팽배한 사실은 매우 주의를

요한다고 본다. 새로운 동양고고학계의 성과를

근거로 우리나라 고대 청동기 문화의 기원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바른 서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이형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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