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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식이야기56

 

기하무늬 거울의 극세공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와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성과에 의하여 동감(銅鑑)의  사용

​시기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이미 청동으로 만든

거울[동경(銅鏡)]이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청동기 발명 이후 은나라의 상류층에는 청동 용기에

물을 담아 수경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을 중국 고대

문헌에서는 동감(銅鑑)이라고 한다. 동감은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넓은 너래기와 같이 생겼다. 그 유물의

예가 전해진 것은 춘추전국시대이다.

​

청동기시대에 처음으로 만든 청동 거울은 발해연안

청동단검과 함께 분포 되었다. 발해연안에서 출토되는

기하학적 무뉘 청동거울은 초기에는 거울의 뒷면에

고리가 2~3개 달리고 굵은선으로 뮈늬를 장식한

이른바 거친무늬 거울[조문경(粗紋鏡)]이 유행하였고,

후기에는 가는 선으로 장식한 이른바 잔줄무늬

거울[세문경(細紋鏡)]이 발달했다.

​

발해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 조양(朝陽) 십이대영자

(十二臺營子) 제 3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번개무늬

거울은 거울의 뒷면 원판의 가장자리에 테를 두르고

그 안에는 짧은 직선으로 바탕무늬[지문(地紋)]를

삼고 굵직한 번개무늬를 배치하였다. 이와 똑같은

기하학적 무늬 거울이 요동반도 태자하(太子河) 유

역의 본계시(本溪市) 고대자(高臺子)의 한 돌널무덤

에서도 출토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두 지역은

모두 고조선의 강역으로, 전형적인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요동반도에서는 대릉하 유역 남산근문화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심양시 정가와자(鄭家窪子)의 토광묘에서

청동단검과 함게 번개무늬 청동 거울이 출토되었다.

​

한편 한반도에서는 평양, 평안남도와 충청남도에서

기하학적 무늬 청동거울이 발견된 바 있는데, 평양과

충청남도에서 발견된 거울은 뒷면의 상단에 2개의

고리를 달고 바탕에 직선 또는 사선무늬를 깔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평안남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기하무늬 거울은 뒷면의 주연(周緣)

안에 짧은 빗금무늬를 두르고, 거울 바탕에는 별무늬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삼각형 안에 빗금무늬를 두르고,

거울 바탕에는 별무늬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삼각형 안에

빗금무늬를 엇갈리게 장식하였다. 이들 기하무늬 청동

거울은 대릉하 유역이나 요동반도의 기하무늬 거울과

마찬가지로 번개무늬로 장식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적

동질성은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

전(傳) 충청남도 출토 잔줄무늬 거울과 평안남도 대동군

대보산리 출토의 잔줄무늬 거울은 실랍법(失蠟法: lost wax)

이라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주조술로 주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즘 말하는 광케이블과 같은 가는 선(線) 예술의

극치를 이룬다. 문자 그대로 극세공(極細工) 이다. 이

시기는 바로 고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고조선시대의 이와 같은 주조기법은 아직도 불가사이다.

중국의 청동예기(靑銅禮器)가 조형미(造形美)의 극치라고

한다면 고조선시대의 잔줄무늬 청동거울은 선형미(線形美)

의 극치다. 이는 현대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최첨단

광케이블 공학을 능가하는 불가사의한 선의 예술이다.

​

과거에는 만주 지방이나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을

시베리아에서 非고고학적인 방법으로  수집된 몇몇 청동

거울과 비교하여 청동 거울이 시베리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의 청동기문화의  기원을

'북방(또는 서방)전래설' 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는 이와같은

편견을 재고하는 데 충분하다.

 

출처 :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이형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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